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사군 한반도설 식민사관 주장 사건 (문단 편집) == 주장 == 요약하자면, ‘[[한사군]]이 한반도에 있었다는 학계의 정설은 [[식민사관]]이다.’가 이들의 주장이다. >'''사건 1''' >2014년 4월 22일, ‘식민사학 해체 국민운동본부’가 동북아역사재단에 대해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그들은 “재단은 설립 취지와 달리 동북공정에 부응하는 주장을 홈페이지에 지속적으로 게시했고 최근에는 한강 이북이 중국 식민지였다는 주제의 영문 책자를 국고를 들여 발간해 세계 각국에 배포했다”며 감사 청구 취지를 밝혔다.(관련기사 《연합뉴스》 2014년 4월 22일, >------ >〈재야사학계, 동북아재단 상대 공익감사 청구〉) >'''사건 2''' >2015년 10월 4일 새누리당 이상일 의원은 동북아역사재단이 외교부의 의뢰를 받아 미 의회조사국(CRS)에 제출한 자료에 중국의 동북공정을 인정하는 내용을 담은 자료와 지도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에 따르면 동북아역사재단은 고조선의 영토를 현재의 요령성 일부로 경계를 한정하고 기원전 108년 중국 한무제가 설치했다는 한사군이 과거 한반도 일부 지역을 통치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듯한 지도를 미국에 보냈다. 인하대 복기대 교수는 “한사군이 한반도에 있었다는 이야기는 일제 강점기 때 식민사학자들이 ‘한국은 다른 나라의 속국’이라고 날조한 사실”이라고 지적했다.(관련기사 >------ >《중앙일보》 2015년 10월 5일, 〈“한반도에 한사군” 왜곡된 고대사 자료 미 의회에 보냈다〉) >'''사건 3''' >2015년 3월 24일 새정치민주연합 [[도종환]] 의원은 동북아역사재단이 2019년 발간을 목표로 준비 중인 동북아 역사지도에서 서기 120~300년 시기 고구려 국경선 위치 비정이 중국이 동북공정 일환으로 만든 중국역사지도집의 위치 비정과 완전히 일치한다고 주장했다. 중국 [[랴오허|요하]] 지역부터 한반도 서북부 지역을 중국 한나라 땅으로 편입시켜 놓고 있다는 것이다. [[랴오허|요하]] 양쪽 지역을 한나라 땅으로 편입시킨 것에 대해 도 의원은 한사군을 한반도에 위치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 >관련기사 《경향신문》 2015년 3월 25일, 〈동북아역사재단 추진 역사지도, 중 ‘동북공정’ 지도 베끼기 의혹〉)[* 경희대학교 인문학연구원 부설, 한사군 한반도설’은 식민사학의 산물인가 1 [[http://www.ikaa.or.kr/webzine/read.php?pid=8&id=45&PHPSESSID=27b3468aad48569b098d5553ece57ce4|#]]]위에서 문제가 되는 동북아역사재단 관련 사태는 박근혜 정부의 국사교과서 및 한국사 왜곡과 관련하여 뉴라이트 계열의 정치학자가 이사장이 되어 추진한 역사왜곡의 사태로 이들과 이 재단은 박근혜 정부의 종말과 함께 해체되었다. [[한사군]]이 한반도 북부에 있었다는 것은 공인된 정설이다. 그러나 유사역사학자들은 이를 '한사군 한반도설'이라고 이름붙여 폄훼하며, 사실 이건 조선총독부가 한민족을 폄훼하기 위해 날조한 역사라고 주장한다. 또한 해방 후 70년이 지나서 나온 『동북아역사지도』도 조선총독부의 관점을 그대로 추종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덕일]]의 『매국의 역사학, 어디까지 왔나』에서 이들의 주장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동북아역사지도는 기존의 정설을 따라 만들어 졌는데, 한사군 한반도설 식민사관설에 오염된 국회의원들에게 비판을 받게 된다. 특위 위원장 대리인 새누리당 [[김세연(정치인)|김세연]] 의원은 '과거 학설을 무비판적으로 이어가면서 시각의 근본적인 재정립이 되지 않아 지도 편찬사업에 문제가 불거졌다.'면서 '고대사 관련 내용은 반드시 수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2&aid=0002802845|#]] [[이덕일]]은 『매국의 역사학, 어디까지 왔나』는 국회 동북아특위 속기록을 공개하며 동북아역사지도가 '중국 동북공정을 추종하고, 일본 극우파의 침략사관을 그대로 따르는 지도', '한반도 북부가 중국사의 강역이었다고 주장하고, 심지어 위나라 조조가 경기도 일대까지 점령했다고 그려놓았으며, 일제 식민사학이 발명한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에 따라 4세기까지도 한반도 남부에는 백제도 신라도 없었다고 주장하는 지도'라고 비난하였고, 결국 동북아역사지도 사업은 좌초되었다. 또한 일부 유사역사학자들은 아래와 같이 황당한 주장을 하기도 한다. >역사연구상에서 1차 사료는 문헌자료다. 낙랑군의 위치 문제를 파악하는 데도 고고 유물․유적보다 문헌사료를 더 중시해야 한다.[[http://xn--ok0bv9py4iq1g8le3rc.com/read/read_view.php?idx=97&PageNo=1&SLastCat=03&SText=&SField=a.title&pages=column|#]]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